말씀을 듣지 않은 결과 세 가지-1
- 예레미야 25:8~9 -
 
서산뉴스

 

  제가 올해 4월 달에 어디가 심하게 아픈 곳은 없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까라지고 눕고만 싶으며 운전을 하기에 힘들 정도로 몸 상태가 최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터라 몸 어딘가에 큰 병이 생긴 거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올해가 짝수해라서 건강보험공단에서 하는 검진에 해당돼 4월 20일에 검진을 하고는 그 날 즉석에서 의사와 면담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큰 이상소견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은 했지만 몸 상태는 여전히 천근만근이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몇 군데 대학병원에 연락을 하니 의사들 파업으로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5월 하순쯤부터 몸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컨디션도 조금씩 좋아져 움직임이 수월해졌고 운동도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큰며느리가 근무하는 네이버에서 가족들 검진을 한다고 해서 예약을 한 후 8월 31일에 건강검진을 했고 9월 말쯤에 결과 통보를 받았습니다. 

 

  나이를 먹다 보니 몇 가지 추적관리가 필요하다고 나왔지만 검사 상 딱히 문제가 되는 곳은 없었습니다. 

 

  의사의 최종 판정을 보니 신체나이는 63세로 나왔고 종합평점은 95점이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그렇게 높은 점수를 받은 적이 몇 번 없었는데 병원으로부터 건강 관련 높은 점수를 받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 기독교를 가리켜서 ‘말씀의 종교’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친히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 후로도 선지자들을 통해 계속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일하시는데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유다 백성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지금도 교회백성들을 보면 교회에 몸담고 있지만 하나님이 때를 따라 주시는 말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지 않을 때 어떠한 결과가 오는지 세 가지를 깨닫고 은혜를 받겠습니다.

 

  첫째, 쳐서 진멸하십니다.

  누구를 통해? 북방 모든 족속과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을 불러다가 유다를 쳐서 진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멸은? 국어사전에서 ‘모조리 멸망하거나 죽어 없어진다’는 뜻으로 그야말로 절망이며 소름 돋는 끔찍한 단어입니다.

 

  계9장에 황충이가 등장하는데 이때가 되면 무저갱의 연기 때문에 해와 공기가 어두워지는 흑암의 시대가 되어 영적으로 캄캄한 밤을 만나게 됩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면 신앙인들이 영적으로 졸며 잠을 자느라고 환난이 오는 줄도 모르고 영적 소경이 되어 될 일과 하실 일을 전혀 알지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신앙은 영이 밝아지는 것이고 그래야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영이 어두우면 밤에 속한 자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대를 황충이가 나오기 위한 전조증상으로 서서히 교회의 영적인 부분을 어둡게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교회의 강단과 설교자들의 입에서 예언의 말씀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기복신앙과 인본주의가 차지한 것입니다. 

 

  설교자는 당연히 예언자이기 때문에 그가 증거하는 설교에 예언의 말씀이 담겨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 교회들이 증거하는 설교를 보면 예언의 냄새도 나지 않고 귀를 세우고 들으려고 해도 하나님의 예언(계시록)을 들을 수 없는 시대가 될 정도로 이미 한참 어두워졌습니다. 

 

  여러분! 설교자가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의 심령을 사단이 사로잡아 그 입에 된 일과 하신 일만 증거 하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그 결과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의 영이 무뎌지고 어두워지니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처럼 영이 어두워지는데 무엇을 분별할 수 있겠으며 분별을 못하는데 악한 영과 어떻게, 무엇으로 싸울 수 있겠습니까? 

 

  계11장에는 두 증인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그에게 권세를 주셔서 예수님 재림하시기 전에 삼년 반 동안 교회와 믿는 자들을 향해 예언하는 일을 합니다.

 

  이때가 되면 두 증인이 증거하는 말씀(예언)을 들어야 영이 밝아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년 반이 지나면 하나님이 두 증인에게 주셨던 권세를 가져가시므로 큰 성 길에서  죽임을 당하는데 시신을 장사하지 않고 구경거리로 삼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두 증인에게 생기가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나서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듣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계14장에는 예수님이 시온산에 강림하시고 14만4000 하나님의 군대도 예수님과 함께 시온산에 서 있는데 이들이 땅에 있는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와 모든 악인을 진멸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일곱 째 나팔을 불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대접 쏟는 재앙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진멸하신 후에 이 땅에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천년 동안 이루어지는 것이 성경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열여섯 명의 선지자들이 증거한 핵심 내용은 ‘구원과 심판’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고 어떻게 하면 심판을 당하는지 성경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심판을 다른 말로 하면 ‘진멸’인데 대부분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사력을 다해 주일을 지키며 주의 일에 헌신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대가 바뀌는 것을 알지 못해 심판을 당한다면 그날 가서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이렇게 된 원인은 물론 분별력을 상실한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설교자들이 때에 맞는 예언과 약속을 증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성경을 통해 분별할 수 있도록 성장하고 장성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예언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것이 무당의 예언인지? 하나님의 예언인지? 분별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은 외면하고 아무거나 다 아멘 한다면 그것이 무슨 믿음이겠어요? 

 

  어린이집 수준으로 막연하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그 날 가서 주님이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면 그때 가서 발을 동동 구르고 슬피 울며 이를 갈아도 방법이 없고 미련한 다섯처녀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악인의 세력을 진멸하실 때 거기에 합세해서 하나님의 원수들을 제거하는 암행어사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진멸하실 때 진멸당하는 편에 서면 안되고 하나님 편에 서서 진멸하는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둘째, 놀램과 치소거리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놀랄 일이 없어야 하고 설령 환난이 오고 심판이 와도 놀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하실 일을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란다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치소는? 빈정거리며 웃는다는 뜻으로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가 되어 인류역사를 마무리 하실 때가 되면 그 일을 증거하십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거나 그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을 조롱하고 비웃으면 하나님이 그를 치소거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어떤 비밀을 나타내실 때 모든 사람에게 다 알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어떤 종에게 그것을 알려주시고 나타내게 하십니다.

 

  주목할 것은 그때 그 종이 특별하다거나 대단하다면 사람들이 거부하지 않고 받아 들일텐데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을 들어 쓰시다 보니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입니다.

 

  노아를 보더라도 하나님은 방주의 비밀을 노아에게만 보여 주셨고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랐으며 가족들은 노아에게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동네 사람들, 지역 유지, 친구들 할 것 없이 다 나서서 노아가 하는 일이 틀렸다며 한 마디씩 거드는데 이유는 왜 배를 산꼭대기에다 짓느냐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때 노아가 방주를 바닷가에 지었다면 어땠을까요? 다 방주에 들어왔을까요? 

 

  어차피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좋아하지 않으니 그때는 그 나름대로 반대 명분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외부의 말이나 환경에 조금도 타협하거나 영향 받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그대로 이행했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로 유황불로 심판당할 소돔성의 비밀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시대마다 비밀을 나타내는 목적은 그때 주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구원하시지만 그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는 심판하기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이치로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다섯 째 나팔과 여섯 째 나팔에 해당하는 환난의 비밀을 증거 할 때 그것을 전파하는 종의 말을 듣고 따르면 사는 길이 열립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 나타내실 최고이면서 고이 간직해 온 ᄒᆞ님의 마지막 비밀입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된 비밀은 영원한 비밀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어느 시점까지만 비밀로 두셨다가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은 비밀을 개봉하셔서 나타내십니다. 

 

  이것이 일곱 인으로 꼭꼭 봉하셨다가 인 떼기에 합당한 자가 나타나니 그때 드디어 인을 떼시고 비밀을 열어 알려주시며 이것을 예언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예언이니까 약속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약속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곧 하나님의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설교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예언(prophecy)이 포함돼 있어야 하고 설교자는 예언자(prophet)가 되어야 합니다.

 

  예언이라고 할 때 싸구려 생각으로 내일 무슨 일이 있을까? 합격할까? 떨어질까?를 알려주는 것은 점쟁이지 예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해 일곱 인으로 봉했다가 때가 돼서 열어주시는 계시록의 말씀이 예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은 반드시 성경중심이고 성경중심은? 예언중심으로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제가 가끔씩 영적인 신앙이 무엇인지를 설명드립니다.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영적영적 하면서 무슨 신비한 체험을 하고 환상을 보는 것을 영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영적인 것은? 성경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서 벗어난 것은 더 이상 영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그 결과로 놀램과 치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세 번째,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하십니다. 

  땅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진짜 농사를 짓는 땅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 밭 땅입니다.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것은 때를 따라 하늘로부터 내리시는 비입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나면 하늘에서 봄 비가 내려 씨앗이 싹이 나고 뿌리가 내려 자라나지만 비가 내리지 않고 가물면 싹이 나오지 않고 나왔더라고 타죽습니다. 

 

  같은 이치로 마음 밭에도 비가 내려야 하는데 예수님은 굳은 밭, 돌짝 밭, 가시 밭, 좋은 밭을 통해 네 가지 마음 밭을 설명하셨습니다. 

 

  땅에 비가 내리지 않고 극심한 가뭄이 들어 황무지가 되면 거기에 아무리 좋은 씨를 마음 껏 뿌려도 싹이 나지 않습니다.   

 

  TV에도 보면 가끔씩 유니세프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후원하라고 꼬맹이들까지 나무를 해다 팔며 일을 하는 참상을 보여줍니다. 

 

  그 프로가 나오면 저도 유심히 보는데 비가 언제 내렸는지도 모르고 마실 물도 없어서 웅덩이에 고인 흙탕물을 그냥 마십니다. .  

 

  우리 마음의 땅에도 하늘에서 늦은 비 성령이 단비로 내리지 않는다면 영적 기근이 들어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말씀한 것을 보면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어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두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히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암4:7~8)

 

  이것이 아모스 선지자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때에 맞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골고루 내려 주시는 것이 은혜이고 그 심령이 좋은 밭이 되어 결실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의 시대에 물이 있고 생수가 있다면 걱정할 일이 없겠죠? 

 

  생수는 성령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으므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면 그 이상의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과 마음 밭에 사시사철 때를 따라 비를 주시면 풍성함이 있지만 황무지가 된다면 그것이 저주이고 심판입니다. 

  

  결론으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꼭 들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듣지 않으면 오늘 말씀처럼 하시겠다는 이 내용을 기억하시고 언제나 성경을 통해 말씀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사입력: 2024/10/27 [13:43]  최종편집: ⓒ 서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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